divinità
1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의 피에몬테에서 태어났습니다. 친부모와의 마지막 기억은 절대 마도학자라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대화. 이후 프란체스카는 평범한 집안에 입양되어 평범하고 모범적인 삶을 꾸며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길을 지나다 바닥에 난 작은 창문 틈으로 어떤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 아이 앞에서는 자신을 꾸며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좁은 창문 틈을 통한 대화는 소녀의 일상 속 도피처가 되었습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마도술로 지하실 안을 비춰주는 소녀는 아이에게도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지막 밤, 소녀는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2
사건은 갑작스럽게 발생했고, 우발적이었습니다. 프란체스카가 마도학을 사용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부모님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마도학자를 끔찍하게 혐오했던 부모님은 프란체스카를 추궁하고자 총을 들고 소녀의 방으로 향합니다. 처음 보는 그들의 표정에 겁먹은 소녀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부모님은 그런 소녀를 죽이고자 결심했습니다. 반사적으로 공격을 막기 위해 시전 된 마도술은 아직 소녀가 다루기엔 낯선 것이었습니다. 눈을 뜨자 부모님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프란체스카는 그것을 기점으로 자신을 꾸며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목격자를 모두 죽인 후 소녀는 피에몬테를 떠납니다. 그렇게 목적지 없는 방황이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하실의 아이에게는, 끊임없는 기다림만이 남겨집니다.
3
방황의 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옵니다. 제 1방어선 학교는 갈 곳 없는 마도학자인 프란체스카를 기꺼이 거두어 갑니다. 그 누구도 소녀를 책망하지 않는 곳, 평화. 하지만 이런 것들은 프란체스카에겐 낯설기만 했습니다. 쉽게 늘어놓는 평화론은 더러워진 손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평화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프란체스카에게 걸맞는 장소가 손을 뻗습니다.
4
재건의 손. 폭풍우를 이용해 순혈 마도학자들만의 세계를 꿈꾸는 집단. 인간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프란체스카가 몸담기에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프란체스카는 제 1방어선 학교를 뒤로하고 재건의 손에 소속되게 됩니다. 이미 더러워진 손을 씻는 것은 어려웠지만 물들이는 것은 간단했기에, 프란체스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간부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녀에게 재건의 손은 더할 나위 없는 일종의 집이었지만 딱히 재건의 손의 사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순혈 마도학자에 대한 특별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진흙탕 위에 세워질 낙원에 대한 동경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녀에게 주어진 자유가 마음에 들었을 뿐입니다.
5
평소와 같이 파견된 임무 지역에서 프란체스카는 조금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혼혈 마도학자. 그는 자신의 반쪽짜리 피를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꾸밈없는 모습이었죠. 프란체스카는 그 모습에서 오래전 묻어두었던, 어쩌면 그날 스스로 죽였던 어린 날의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마도학자임을 숨기고 연기하기 바빴던 소녀를요.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은 프란체스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창문 틈 너머로 보였던 찰나의 빛. 다시 만나자는 목소리. 눈앞의 그녀는 그날의 소녀와 사뭇 달랐지만 파비아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찾아 헤매던 소녀의 행방을.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요. 이를 기점으로 파비아에게 흥미를 느낀 프란체스카는 종종 파비아를 찾아옵니다. 항상 깔보는 듯한 말투였지만, 프란체스카가 묻었던 어린 소녀는 그를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6
평소와 같은 만남이었지만, 파비아는 프란체스카에게 다른 제안을 합니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어? 아가씨의 소속 따위는 알 바 아니야. 중요한 건 귀하신 아가씨의 결정이지. 어때? 프란체스카는 진흙탕 위에 세워질 낙원보다 자유로운 진흙탕을 선택합니다. 재건의 손을 나온 프란체스카는 변절자가 되어 평생을 쫓길 테지만 소리 내어 웃어 보입니다. 그날, 그녀는 해묵은 이름을 버립니다. 리제트, 내 이름이야. 기억해 둬. 반쪽.